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제가 테일즈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시리즈 중 엔딩을 본 것은 단 한 편도 없으며, 그나마도 플레이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했던 것은 데스티니2가 마지막이지요. 물론 그 후의 심포니아나 레전디아 혹은 어비스 같은 작품도 해 보기는 했지만, 초반만 깔짝거리고 그만 둔 수준입니다. 따라서 테일즈 시리즈의 팬이 보시기엔 조금 거부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어도 할 말이 없으니 대강 넘어가 주시지요. 하. 하. 하.
어제(6월 20일), 마켓플레이스에 테일즈 시리즈의 신작인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의 체험판이 등록되었습니다. 현세대기로 발매되는 첫 테일즈 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닌 듯 합니다.
타이틀화면. 후지시마 코스케 씨의 이름이 눈에 띄는군요.
역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그래픽입니다. 베스페리아는 심포니아에서 시작된 '툰렌더링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따르고 있고 특히 영문 설명에는 'Animation RPG'라고 표기할 정도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XBOX360의 성능을 활용한 HD 영상을 이루어내면서, 확실히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툰렌더링을 사용한 게임은 많았지만(당장 반다이남코가 이전에 발매한 트러스티벨 또한 툰렌더링을 사용하고 있지요) '애니메이션 같은' 화면을 빚어낸다는 점에서 보면 베스페리아는 이전의 게임들을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후지시마 코스케 씨가 디자인한 캐릭터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대사창만 지우면 애니메이션을 캡쳐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그래픽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캐릭터나 배경의 모델링은 그렇게 뛰어난 수준은 아닙니다. 분명 깔끔하고 부드러운 화면을 보여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PS2 시절의 그래픽을 해상도만 높여 놓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툰렌더링이라는 기법 자체가 그 단점을 어느 정도 감추어 주고 있고 분명히 보기에 나쁜 그래픽은 아니지만, 기계의 성능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제작사는 다르지만) 동사가 발매한 트러스티벨의 그래픽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아쉬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확실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요.
게다가 필드나 전투화면에서의 시점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물론 전투에서는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지만 심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역시 불만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고정 시점으로 만들 경우 필요 없는(보이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서 전체적인 그래픽 수준을 높일 수 있지만 베스페리아처럼 성능에 비해 아쉬운 그래픽을 보이는 게임에서 꼭 그래야 했는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차라리 배경을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면죄부(?)라도 받았을 텐데 말이지요.
필드에서의 이동은 이런 식. 흔히 보던 방식입니다.
테일즈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전투 역시 많은 유저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이 들려오는 이야기는 '템포가 느리고 답답하다'라는 것인데, 예전 2D 시리즈 밖에 즐겨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에 대해 뭐라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겠군요. 확실히 2D 시리즈에 비해서는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격 모션이 매우 큼직큼직해서 어느 정도는 상쇄가 된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이 없다고 할까요, 조금 산만한 느낌이군요.
대강 이런 식. 조금 정신 없습니다.
전투는 역시 심포니아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L트리거를 당기고 있는 동안은 전투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트리거를 놓으면 지정된 적과의 일직선상에서 움직이게 되는 식이지요. 물론 각자의 위치에 따라 그 선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가 일직선 상에서 움직이던 이전 시리즈보다는 상당히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합니다. 그러나 몬스터를 공격하던 도중에 옆구리를 얻어맞아 공격이 끊기고, 그것을 또 옆에 있던 동료가 뒤통수를 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동료가 각종 기/마법을 사용하고 하다 보면 그야말로 둘이 싸우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상황이 됩니다. 제작진의 말처럼 '시리즈의 팬이라면 쉽게 적응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렵다고 느껴질 만한' 난이도입니다.
제작진도 밝히고 있듯이 체험판에서는 일체의 성장 요소를 배제하고 전투만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고, 테일즈 시리즈의 특성 상 이 조치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다만 그 전투가 혹평을 받게 된 바람에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지만, 어쨌든 이것은 체험판이니 제품판에서는 수정될 가능성도 있겠지요(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전투는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적과 접촉하면 발생하는 방식입니다만, 아쉽게도 접촉 방법에 따른 변화는 없습니다. 몬스터의 뒤통수를 치던 몬스터에게 똥꼬를 찔리던 똑같은 상황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불필요한 전투를 게이머가 임의로 회피할 수 있다'는 의미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이마저도 저처럼 필드에 무언가를 두고 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오히려 레벨 노가다만 귀찮아 질 듯). 뒤를 잡히면 전투 시작 후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다던가 하는 식의 페널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또 많은 게임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입니다.
느낌표 띄워봤자 도망가면 못 쫓아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다른 XBOX360 게임처럼 A버튼: 결정, B버튼: 취소, 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전투에서는 PS에서의 배치를 그대로 옮겨오는 바람에 굉장히 헤매곤 했습니다. 특히 전투 상황에서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 메뉴를 열고 그대로 B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또 얻어맞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는 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좀 수정을 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전 시리즈에서는 옵션에서 버튼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이에 대한 불만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히 제가 얼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인정할 수는 없으므로(...) 그냥 우기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예, 버튼 배치 매우 불편합니다.
어째 체험판을 해 보는 바람에 구매의욕이 더욱 사라져 가는 느낌이지만, 아직 발매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적당히 수정을 해서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픽이야 어차피 기본은 해 주고 있으니 그렇다쳐도 가장 중요한 전투가 저래서야 달가울 수가 없군요. 제작진에게 여유가 있다면 점점 공기와 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주인공도 좀 챙겨주었으면 하지만 이거야 뭐......
재미있는 것은 국내의 경우 아직 골드멤버쉽을 가진 유저만이 체험판을 즐길 수 있지만(실버는 1주일 후) 일본의 경우는 구분 없이 모두 다운로드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일본에서의 XBOX360이 처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다행히 얼마 전 발표되었듯이 일본의 유저들을 겨냥한 RPG들이 하나둘 갖춰지고 있으므로 지켜볼 만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