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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잡담, 잡담.../애매모호 잡담

추억. 2007/10/20


학생들을 가만히 보면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좋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노는데도 성적이 좋은 녀석들이 있고,

또 열심히 놀아서 성적이 좋지 않은 녀석들이 있는 반면에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남는 게 없는 불쌍한 녀석들도 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열심히 놀면서도 성적은 좋은 녀석에 속해 있었는데,
웃긴 게 열심히 놀면 놀수록 성적은 점점 올라가는
(반면에 같이 노는 녀석들은 그에 비례해서 성적이 떨어지는)
"재수없는" 녀석 중 하나였다.

중학교 2학년 때도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50등 정도이던 성적이
반년을 열심히 땀 흘려 놀았더니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무려 24등까지.

어린 맘에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
어머님께 독서실을 끊어달라고 졸랐고
학교 보낸지 8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에게서 "공부하겠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어머님께서는
선뜻 돈을 내어 주셨다.

그리하여 친한 친구 A군, B군과 함께 독서실을 끊은 나는
물론 독서실에 가방만 던져놓고 열심히 놀러 다녔지만

그래도 3시간에 1시간 정도는 공부를 했으니
아예 작정하고 놀았던 예전에 비해서는
꽤 공부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
"너는 공부를 할 놈이 아니다"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
기말고사에서는 72등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 이후 내가 처음으로 공부를 했던 것은 군대에서였다
=_='')

그리고 겨울방학.
같이 놀던 친구 A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임 선생님께서 비상소집을 걸었으니
=_=''
얼른 학교로 튀어 오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비상연락망에 따라 또다른 친구 C군에게 연락을 하고
서둘러 학교로 튀어나갔다.
(차비도 아까워서 1시간씩 걸어서 다니던 녀석이 택시를 타고 갔다
=_='')

학교에 가니 나온 녀석은 A군, B군, 그리고 나.
A군과 B군은 선생님께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슬슬 불길함이 느껴지던 그 순간,
우리를 발견한 선생님께서는
"동우 넌 왜 왔냐? 뭐, 왔으니까 맞고(!) 가라."
=_=''

......
내막을 알고보니
기말고사에서 가장 많이 성적이 떨어진 A군과 B군을 걱정하신 선생님께서
마침 당직을 서던 날 조언(물론, 육체적인)이라도도 좀 해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었다.
겁이 난 A군은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를 불렀고
=_=''
내가 연락했던 C군은
"예비소집일도 아닌데 비상소집이라니, 그런 일이 있을리 없지."
하고 다시 퍼질러 자 버렸으니
결국은 혼자 바보된 셈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놈들도 개학하면 다 맞을 거야."
라고 하셨지만,
"나중에 때린다."는 "안 때린다"와
동의어가 아닌가 말이다=_=
''

결국 떨어진 등수대로 무려 48대나 얻어맞긴 했지만,
홀로 심심하신 선생님과 학교에서 탁구도 치고 먹거리도 얻어먹고
나름 재밌게 놀다 온 기억이 있다.

문득 생각나서 선생님 성함을 검색해 보니
어라, 제천동중학교에 계시네=_=''(인터넷, 참 좋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데
언제 한 번 박카스라도 들고 찾아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