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나부랭이/게임 말고

FF 오케스트라: 디스턴트 월드

 지난 7일에 있었던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술에 전당에 가 본 것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한 것도 처음이네요. 공연 내내 서울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에 대해 말이 조금 많은데, 처음 본 녀석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언제나처럼 두서 없는 관람기, 시작합니다.

1.
 공연 전에 기념품으로 앨범과 티셔츠가 판매되었는데, 결국 못 샀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대표로 줄을 섰는데 딱 바로 앞에서 품절되더군요. 마지막 앨범을 산 분도 실은 같은 일행이었는데 그 분도 제대로 된 건 아니고 케이스가 파손되어 회수될 것을 억지로 샀습니다. 사실 앨범 자체는 스웨덴에서 했던 1회 공연을 담은 것이라 이번 공연과는 곡 목록이 조금 달라서 아쉬움이 덜하긴 하네요. 이번 공연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인 'Ronfaure'이 앨범에는 없거든요.
 하지만 결국 샀습니다. 이베이에서, 신품 5.99달러(기념품으로 판매된 것보다 싸다!).

2.
 제 자리는 3층 맨 첫줄의 가운데 부근이었는데, 양 옆으로 커플들이 앉았던 것 말고는 다 좋았습니다. 무대도 스크린도 잘 보이는 위치였지요. 1층과 2층의 일부 블록에서는 정체불명의 고주파음으로 인해 2부 공연을 완전히 놓쳤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3층에선 그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지인의 이야기로는 음악을 즐기기에 상당히 좋은 자리라고 하더군요.

3.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스크린으로 해당 게임의 영상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첫 곡인 'Liberi Fatali'가 연주되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파판8의 동영상이 나오는 식이었지요. 영상은 조금 성의없이 편집된 느낌도 들었지만 팬들을 의식한 부분도 많이 보였습니다. 파판8의 전투 음악인 'Don'be afraid'는 게임의 플레이 영상이 먼저 흐르다가 로딩 후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연주가 시작된다거나, 정규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었던 'Terra's Theme'(일본판에선 '티나의 테마')가 흐를 땐 파판6의 오프닝(3대의 마도아머가 설원을 걸어가는 그 장면)의 스탭롤이 오케스트라 공연의 스탭롤로 바뀌어 있다거나 하는 등...
 하지만 5편의 음악에는 게임 영상이 아니라 아마노 요시타카 씨의 일러스트만을 볼 수 있었는데(4편은 NDS판의 동영상) 차라리 잘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6편의 오페라에서 잠깐 게임 영상이 나왔을 때 뒷자리에서 들렸던 비웃음을 생각하면 말이지요.
 
4.
 프로그램 편성을 보면 7, 8편의 곡이 역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만, 파판11의 곡도 2곡이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Ronfaure'의 오케스트라 버전은 눈물이 날 정도(저 곡이 좋아 목숨 걸고 산도리아까지 걸어갔던 1人).

5.
 게다가 예상 외의 소득이라고 할 만한 파판14의 음악과 영상들. 파판14편은 우에마츠 노부오 씨가 모든 곡을 맡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더니 공연에서 몇몇 곡이 메들리로 연주되었습니다. 영상들도 이전에 공개된 트레일러에 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전 처음 본 것이라 만족.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로비에는 우에마츠 씨와 전혀 상관이 없는 파판13의 캐릭터 패널이 서 있더군요. 우에마츠 씨는 그걸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6.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게 바로 이수영 씨의 '얼마나 좋을까'. 팜플렛에는 원곡명인 'Sutekidane'가 그대로 적혀 있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노래는 실망, 대실망. 팬으로서도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이수영 씨도 많이 힘들어 보였고......
 악조건 속에서도 팬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노래를 들려줄 수 없는 상황이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팬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7.
 게다가 연주자 분들도 연습이 부족했던 것인지 중간중간 음이 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 신경쓰지 않고 들을 정도는 되었지만...
 곡을 하나 빼먹을 뻔한 지휘자 아니 로스 씨의 실수는 뭐 애교로 넘어가는 거구요.

8.
 공연장 측의 미흡한 대응이라던가 연주자들의 실수도 문제였지만 관중들의 수준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듣기로는 핸드폰 등을 이용해 녹음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고 말이지요. 인터미션 때 터져나온 카메라 플래쉬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9.
 정규 프로그램 외의 앵콜곡은 'One-Winged Angel' 단 한곡. 이 곡만 '어드벤트 칠드런'의 영상이 쓰였습니다. 서비스로 우에마츠 씨가 코러스에 합류했는데 짝달막한 키로 다소곳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귀엽더군요(...). 원래는 지휘자가 뭔가를 부탁했는데 마이크를 들고 준비를 하다가 'No, I can't~~~~'을 외치며 매달리는 모습에 다들 폭소.

10.
 당연한 것이긴 한데, 지휘자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김이 좀 샜습니다. 모처럼 영어 공부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
 어찌됐든, 이런 공연이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요. 서울까지 올라갔던 시간과 돈이 그리 아깝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가 보고 싶고, 또 그때는 주최측이나 관중이나 조금 레벨업한 모습을 보고 싶네요.